정씨도 ‘추석 총파업’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고 (가사 분담에 대해) 집안 어른들 면전에서 한마디 할 것"이라면서 "왜 명절마다 남자들은 TV 앞 소파에 앉아 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느냐"고 했다.

◇페미니즘 물결 이후 첫 명절 "이번에는 공기가 다르다"

올 추석을 앞두고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전운(戰雲)이 감돈다. "전 부치기에 집착하는 집안 틀딱(노인 비하 단어)들에게 알아서 먹으라고 말하겠다" "이번 추석에는 보란 듯이 남자들처럼 소파 한가운데 누워서 TV만 보겠다" "어머니만 모시고 호캉스(호텔로 떠나는 휴가)가겠다"면서 각자의 계획을 써놓는 식이다.

지난 설 이후, 미투 운동·성(性)편파수사 규탄집회, 탈(脫) 코르셋 운동 등이 연달아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해마다 명절이면 ‘남녀 역할논쟁’이 있어왔지만, 올 추석은 여성 권리운동이 한바탕 지나간 이후라는 점에서 공기가 다르다.

직장인 장혜인(28)씨 가족은 올 명절을 앞두고 남녀가 일전을 치렀다. 장씨 모녀가 "여자만 차례상을 준비할 수 없다"고 선전포고 한 것. 집안 남성들은 "우리가 큰 집인데 어떻게 그러느냐"고 반발했지만,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성차별’이라며 일치단결했다. 결국 올 추석을 기점으로 차례 음식은 구매하고, 가족 식사는 ‘외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장씨는 "예전처럼 여성에게 일방적 노동을 전가하려면 최저시급 임금이라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양성평등한 추석을 함께 만들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식사 준비를 같이 하고, 가족이 힘을 모아 집안일을 끝낸 뒤, 쉴 때에도 함께 하자는 실천약속 예시까지 내걸었다.

택시기사 이종덕(59)씨는 가족들 성화에 일단 ‘백기’를 들었다. 가사노동 없는 추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 아내보다 더 극성이었다. 이씨는 "아이들이 ‘페미니즘’도 모르냐고 하는데 우리 세대 남자들이 뭘 알겠나"면서 "내 생각은 변함없지만 (자녀들이) 전부 아내 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추석 전날 선유도공원서 ‘여성총파업’ 행사

여성들의 ‘추석 파업’ 분위기도 감지된다. 직장인 김정희(33)씨는 추석을 맞아 모녀가 함께 ‘명절 파업’에 나섰다. 대신 홍콩행 항공권 두 장을 샀다. 김씨는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가 결국 우리 어머니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머니를 설득해 ‘명절 파업’을 선언하고 단 둘이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