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체조와 집단최면

어디선가 성난 호랑이 달려오듯 와서 탁 내려치는 주먹에 내 볼기는 얼얼하다 못해 그 자리서 벌겋게 퉁퉁 붓기 시작했다. 양볼 대기의 아픔보다 나는 몇백명 되는 전체 학생들 앞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워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창피함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봄에 쑥스런 듯 봉오리를 화려하게 피우던 예쁜 튤립이 갑자기 목이 꺾이듯 사춘기 때 당했던 첫 폭력은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상처로 남아 아무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지 않은 채 저녁놀 그림자처럼 내 인생의 강의 언저리에 수시로 어른거렸다. 그때 죄목은 집단체조 즉 사열에 반장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고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북한정권 70주년을 맞아 9월 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10만 명이 벌인 대집단 체조를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우연히 호주에서 뉴스로 접한 대규모 군무와 카드섹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가 마치 돌아가듯 보는 이의 입을 저절로 벌어지게 하였다. 1947년 김일성 지시로 체제 선전을 위해 첫 선을 보인 이후 2013년까지 외화벌이 몫을 단단히 했다. 북한만이 가지는 문화로 정착한 셈이었다. 2014년 김정은은 인권유린 아동학대라는 논란 때문인지 이 공연을 중단한 후 이번에 방북한 특별 수행단 팀에게 보여주기 위해 5년 만에 다시 재개한 셈이다. “이 감격을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김위원장과 북녘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담임이 나를 대표로 찍어 본보기용으로 전교학생들 앞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한 나쁜 경험에서가 아니어도 난 어쩐지 군대가 아닌 장소에서 벌이는 집단체조는 누군가와 상관없이 관제 예술로써 집단최면을 조장하는 듯 보인다. 주최측도 관람측도 모두 스파이다 거물처럼 최면에 걸려든다. 더우기 북한의 ‘아리랑’ 공연같은 파시즘적 전제 군무는 최면의 목적이 사람 등을 즐겁게 하는 이상의 목적이 뚜렷하기에 어쩐지 기괴하고 이상한느낌을 받은지 오래다. 더우기 10만명이 완벽한 프레이드를 보이려면 2억시간이 들어갈 정도로 혹독하게 연습을 하고 심지어 화장실도 못가고 물 한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학교시간을 빼앗기고 연습했다는 어느 탈북자의 증언은 나의 고등학교시절을 생각해도 충분히 사실일거라 생각 한다. 나라면 그 공연보기를 거부했을 것 같다. 아무리 북한에 대한 동경이 있어도 감사하지만 나는 소화하기 힘들다고 손사래 쳤을 것 같다.

호주에 오래 살아서 나만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해 본다. 30년도 전에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국민체조도 돌이켜 보면서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이번에 본 북한 어린이의 집단체조에 나는 현기증마저 났다. ‘개인 신체와 정신훈련을 통해 수령님께 보여드릴 기대에 몸과 마음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증언을 들을 때는 내 동족이라도 땡볕 사열 연습하다 픽 쓰러질듯 집단선동으로 들린다. 호주학교에서 하던 아침기도마저 폐지한지 오래고, 또 크리스마스 노래마저 방송에서 금지한지 오래다. 한 집단의 이익보다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준다는 자유가 이제는 선악 기준마저 혼동시킬 정도로 전체주의를 견제하고 싫어하는 호주사회에 너무 오래 살아서인가?

고등학교 때 줄맞추어 국민체조하고 체력장 하던 것, 교복 착용 등, 이런 유익한 일들도 ‘산업화를 위한 신체 개조작업’, ‘개인 육체에 국가 통제의 변형된 파시즘’, 또는 ‘일제의 유산’이라는 비판으로 사라졌다. 자유가 지나쳐 보이는 호주에서는 오히려 모든 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착용하고 가장 모범적으로 운전하는 남편이 운전면허를 중지당할 정도로 교통법규나 위반에 철저하다. 정말 인간이 먼저다 라는 인본주의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본다. 개인의 자유존중과 공동의 이익은 늘 상충할 때가 있다. 이 둘을 잘 조화해야 에릭프롬이 말한 ‘건전한 사회’가 된다. 가장 현명하다고 자부했던 독일인들이 히틀러라는 지도자의 집단체면에 걸려 방관자로 있으며 파시즘에 동조했듯이 이런 집단체조를 보며 환호하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집단 파시즘의 최면에 걸린 방관자의 유령이 다시 살아온 느낌이다.

하이드팍 공원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120개국 이상의 인종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집단체조 거부로 당했던 상처가 스물스물 올라와 들뜬 도시 분위기가 와 닿지 않는다. 더욱이 지구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관없이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무심해 보이는 군중들이 집단지성으로보다 집단방관자로 보여 군중 속의 고독을 더욱 철저히 느낀 하루였다.

▲신숙희 교수

시드니대 영어교육학(TESOL)박사, 수필가, 칼럼니스트, University Western Sydney Lectu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