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런 ‘분야주권사상’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회자(膾炙)에 오르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단어가 소위 유럽의 개혁교회, 특히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사상에서 비롯됨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설립자이며 네덜란드 수상으로 일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그가 1898년 미국의 명문대 프린스터대학교 스톤재단의 후원을 받아 열린 강연에서 “칼빈주의”에 대해 수일에 걸쳐 강연하면서 칼빈주의 사상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설명했다.

그중에 특별히 눈에 띄던 것은 ‘칼빈주의와 정치’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영역 주권’ 사상이었다. 우리말로는 ‘영역주권사상’으로 번역되었으며 여기엔 공간적인 의미가 부각 된다. 그런데 그 내용상으로 보면 이 단어는 ‘분야주권사상’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승만 박사가 프린스톤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08년 9월이니까 아마 그는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을 읽었을 것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인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영역’이 있는데 그 모든 삶의 영역은 각자 고유의 지배 원리가 있어서 각 영역은 다른 영역에 개입해서 간섭할 수 없고 각자 그 원리에 충실할 때 나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경제분야에 정치분야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자기 시각으로 간섭하면 경제가 온전해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만일 정치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려고 하면 ‘주의’(ism)가 되어 독채체제가 된다고 한다. 반면에 문화가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하려고 들면 문화 독재주의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 모든 영역은 각기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께 책임을 지는 마음으로 자기 발전을 도모한다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다 통치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영역은 각기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전문 학자들은 부단히 연구하며 동시에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기 위해 실제 생활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고, 정치영역 사람들은 이 모든 분야들이 각기 자기들의 규정대로 정직하게 수행하는지 점검하며 그리고 모든 분야들이 서로 잘 소통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실 서구 기독교 국가의 정치체제는 이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영역주권 이론’ 또는 ‘분야주권 이론’이라고 하는데,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교수이던 도이예베르트(Herman Dooyeweerd)라는 기독교 철학자는 이것을 발전시켜 ‘법 영역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우리의 삶의 분야를 15가지로 나누고 그 중요성에 따라 순서를 정했다.

15가지 중에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신앙영역’으로 보고 그다음은 ‘윤리영역’ 셋째는 ‘법률영역’, 넷째는 ‘심미영역’, 그 다음은 ‘경제영역’ 등등으로 나누어 논했다. 각 영역, 또는 분야가 각기 고유의 원리와 법칙이 있지만 모든 영역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영역의 원리를 고려하여 자기 주권을 수행할 때 하나님 중심적인 세상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신앙영역’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될 것은 모든 분야가 모든 분야가 각기 원리 내지 규정에 의해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맥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자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하는데 인맥주의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데서는 아부하는 행위와 남을 중상모략 하는 일,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화된다. 이런 데서는 전문가들이 의기소침해지고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 결과 나라의 발전은 저해(沮害)를 받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고위층을 보면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자들이 코드 인사로 그 자리에 앉아 위급할 때 그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함을 보고 있다.

이번 중국 코로나바이러스19 사건이 발생하지 보건부가 상당히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헤맨 것을 보면서 매스컴은 그 자리에 전문가가 앉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치 논리에 의해 외국인 격리 수용하는 문제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을 보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