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이후 기업들이 수백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24일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등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4개가 내놓은 투자 규모는 총 587조원에 이른다. 이는 연간 국가예산(약 600조원)에 맞먹는 숫자다. 

윤 정부는 출범 전부터 경제 성장의 주도권을 정부가 아닌 기업과 일반 국민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중대재해처벌법과 법인세 등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이에 기업들이 역대급 투자로 화답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규제혁신 장관회의에서 "(규제 혁신을 위해서는) 결국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께서 의지를 갖고 5년간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반도체 투자규모를 늘려 2017년 메모리반도체 초호황기를 맞았던 삼성전자의 사례처럼,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도 신사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늘려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을 보여줬다. 

5년 간 45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내놓은 삼성의 경우 먼저 팹리스(설계)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을 앞세웠다. 한국의 경우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강대국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 안팎에 불과하다. 이 시장은 미국이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절대강자다.  

삼성전자는 인텔, 엔비디아, 퀄컴, 소니 등 분야별 강자들이 포진해 있는 이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PC와 스마트폰 뿐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자동차에도 탑재량이 늘면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국가적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삼성 측은 이날 "삼성의 핵심사업과 신성장·IT는 기업과 산업 생태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이번 투자의 배경을 설명했다.

바이오 역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국가 안보 산업으로 변모했으나 소수 선진국과 대형 제약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삼성은 우선 바이오 주권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며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는 등 새 성장 동력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의 바이오사업은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를 양대 축으로 삼아 성장해왔는데 현재 건설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이 완료되면 CDMO 분야 생산능력은 62만L(리터)로 압도적 세계 1위로 도약하게 된다.

삼성은 이 밖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각별히 신경쓰고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6G)와 AI 등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6G는 5G보다 50배 빠른 기술로 초실감 확장 현실, 고정밀 모바일 홀로그램, 디지털 복제 등이 가능하고 특히나 빠른 반응속도가 필수인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 확장을 위한 필수 인프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국내에 5년 간 63조원을 투자해 순수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세부적으로 전기차나 수소전기차 등 전동화 및 친환경 사업(16조2000억원), 로보틱스 등 신기술 및 신사업(8조9000억원), 내연기관차 등 기존 사업의 상품성 및 서비스 품질 향상(38조원) 등으로 구성했다.

아울러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기술 개발 및 신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8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롯데는 5년간 투자하는 37조원 가운데 41%를 신사업과 건설, 렌탈, 인프라 분야 등에 집중했다. 바이오 사업이 포함된 헬스 앤 웰니스 부문에서는 1조원, 모빌리티 부문에서는 연간 충전기 생산량을 1만대 이상으로 확대하고, 롯데렌탈이 8조원 규모의 전기차 24만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자원 선순환 추세에 따라 리사이클(재활용)과 바이오 플라스틱 사업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친환경 리사이클 제품 100만톤을 생산하고, 화학사업군은 또 고부가 스페셜티 사업과 범용 석화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비 투자와 생산 증설에 7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마찬가지로 5년 간 37조6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은 한화는 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분야에 4조2000억원, 수소혼소 기술 상용화 등에 9000억원을 각각 투자한다. 이 밖에도 방산·우주항공 분야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신성장 사업에 집중해 향후 5년간 총 2만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